삶이 흔들린 1년간 배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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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흔들린 1년간 배운 것들

Lessons learned during a life-quaking year.

내 경험에 의하면, 인간은 실존적 계기를 만나면 지속될 것 같던 일상이 중단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리고 이 위기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험난한 과정을 겪은 후, 전에 없던 선택을 강요받는다.

오늘(‘16.5.12일)은 ’15년에 네팔에서  리히터 규모 7.3의 2차 지진을 겪은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평범한 점심을 먹다가 뛰쳐나와 등지고 서있던 건물이 우리 일행 뒤로 쏟아지고, 아침 식사가 늦게 나온 덕분에 미처 도달하지 못했던 종착 마을이 그날 밤 산사태로 매몰되는,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은 경험은 나의 삶에 매우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아기가 태어난 지 1년이 되면 앞으로도 살아있을 확률이 높다고 여기고 아기에게 앞날을 축복해주는 돌잔치를 열어주듯 ‘죽다 살아난’ 후 1년이 지난 이 시점에 그간 배운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발전적으로 이끌어준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고자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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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12일 고르카로 가는 산길에서 진도 7.3의 강진을 만났다.

자동차나 지하철 같은 문명이 만들어 규칙적인 진동과 달리 땅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불규칙적인 흔들림은 엄청 공포스러웠다. 무너지는 건물 아래에 서 있던 동료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고 제 자리에서 소리밖에 지를 수 없는 상황은 나로 하여금 큰 무력감을 느끼게 했고 그간의 ‘나만 열심히 하면 회사가 지원하는 엄청난 예산과 최첨단 기술로 인류의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무너졌다.

지진이 멈추고 나서도 불안감이 지속되고 극도로 빨라진 심장 박동이 잦아들지 않았다. 실제로는 괜찮지 않더라도 가족들을 안심 시키기 위해 괜찮다고 SMS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과 사실대로 말하고 위로 받고 싶다는 생각이 충돌했다.

귀국해서는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았는데 이유 없이 화가 났다. 네팔 파견을 결정한 상사도 이 정도 규모의 새로운 지진이 또 오리라는 것은 알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해와 민간인이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국제기구의 경고를 전했음에도 무시했다는 원망이 부딪혔다.

이렇듯 위기는 평탄한 삶 속에 묻어두었던 모순을 드러나게 한다. 그리고 이런 모순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자기 설득의 과정이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한 합리화 과정 끝에 깨닫게 되는 것은 이러한 모순은 양립이 불가능하고 외면했던 선택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나에 대해 다음 4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첫째, 내가 누군지(who am I)와 내가 하는 일(what I do)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자기소개를 할 때 ‘내가 하는 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내 옆자리에서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 듯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아니다. 약 네 달 간 상담을 받으며 배운 것은 비록 하는 일이 의미 있고 너무나 만족스럽더라도 직업과 개인으로서의 삶 사이에는 냉정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을 미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자 머릿속에 있던 to-do-list의 우선순위가 순식간에 완전히 바뀌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사무실에 남겨두고 온 일들은 리스트에 맨 끝에도 들어오지도 못했다. 아이와 더 놀아주지 못한 것, 가족과 충분히 여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만 들었다.

셋째, 리더는 자신에게 의사 결정권이 있다 하더라도 해당 사안이 스스로 잘 판단할 수 있는 분야인지 끊임없이 자문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측정 불가한 리스크를 조직원에게 지게 하는 것이 자신의 리더십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칠지 미리 알았다면 결정은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알고있던 것 보다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불합리한 결정에 따른 불필요한 고난을 겪었으니 쳐다보기도 싫을 법한 할 상황인데도 해야 할 일은 더 많이 떠오르고 당장 내 뜻만큼 펼치지 못하는 것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더 잘하려면 public sector에 대해 한참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11년부터 서랍속에 묵혀두었던 GMAT점수를 꺼내서 social innovation / public policy 전공이 있는 4개 학교에 지원했고 운 좋게도 3개 학교로부터 admission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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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의 만학도에게 어드미션을 준 관대한 학교들

그리고 그렇게 12년을 넘게 몸 담았던 조직을 떠나게 되었다.

올해 3월에 태어난 둘째 아이 때문에 학교선택과 입학을 ’17년으로 미루게 되어 그 사이 OLPC (One Laptop Per Child)를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진 보스턴 기반의 innovation & design consultancy인 CONTINUUM에서 business development director로 일하게 되었다.

지난 1년간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다. 재난구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민간인들에게 숙소까지 내어주시고 현명한 판단으로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보호해주신 굿네이버스 노경후 네팔 지부장님과 지부원들, 김이수 팀장님, 지진의 경험이 만성적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지지 않도록 넋두리를 들어주시고 상담해주신 김예원 상담사님, 회복 기간 동안 불평 없이 내 업무를 맡아 처리해줬던 사회봉사단 후배들, 마지막으로 한동안 불안한 상태였던 나를 믿고 지지해준 가족들. 그 외 많은 분들께 큰 빚을 졌고 덕분에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었다.

우연히 경험한 재난 때문에 많은 것을 생각하고 알게 되었다. 삶에 큰 변화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사건 이전의 상태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 먼 훗날 오늘의 결정을 떠올렸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사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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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많은 분들의 도움과 지원으로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네팔인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세상의 관심이 옅어진 지금도 정말 많은 분들이 부족한 기금에 의존하며 인류애를 실천하고자 현장에서 노력하고 계십니다. 네팔인들의 빠른 자립과 회복을 원하신다면 작은 금액이라도 후원 부탁드립니다. 바로가기 : 굿네이버스    Oxfam    UNHC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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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ry0906에 대하여

I help individuals, organizations, and companies solve their own pressing problems in innovative and human-centered ways. As an avid problem-solver with abundant social innovation experiences, I think about how organizations adopt new practices, methodologies, and mindsets and drive change. I have particular interest in non-profit sector, where considerable constraints challenge innovative th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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